비유왕 [毗有王, AD. ?~455] 백제의 제20대 국왕(AD. 427~455)

비유왕 [毗有王, AD. ?~455] 백제의 제20대 국왕(AD. 427~455)


【개인 정보】

  • 이름 : 부여비유(扶餘毗有)
    이칭 : 부여비(扶餘毗), 송서 이만전 백제조에서는 여비(餘毗)로 나와 있다. 그의 다른 이름은 곤유왕(昆有王), 피류왕(避流王)이다.
  • 출생 : 미상
    사망 : 기원후 455년 9월
    재위 : 기원후 427년 12월 ~ 기원후 455년 9월
  • 전임 : 구이신왕
    후임 : 개로왕

【가계 정보】

  • 부왕 : 구이신왕(久尒辛王, ?~427) – 백제의 제19대 국왕(420~427)
  • 모후 : 미상
  • 국왕 : 비유왕(毗有王, ?~455) – 백제의 제20대 국왕(427~455) – 이설이 있음
  • 아들 : 개로왕(蓋鹵王, ?~475) – 백제의 제21대 국왕(455~475)

구이신왕의 맏아들 혹은 전지왕의 서장자로 알려졌으나 정확하지 않다. 《삼국사기》는 전지왕의 서자라는 설도 있으나 분명치 않다고 기록하고 있다. 용모가 아름답고 언변이 좋았다고 한다. 일본 측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구이신왕의 아들 부여주의 아들이라 한다.


【비유왕 연보】

【기원후 427년】

  • 12월, 구이신왕이 반란 중 죽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후 429년】

  • 비유왕 3년, 남조의 송나라에 조공하였고, 좌평 부여신이 죽자 전지왕 때의 외척이었던 해(解)씨 가문의 해수(解須)를 새로운 좌평으로 임명했다.

【기원후 430년】

  • 비유왕 4년, 송나라가 전지왕에게 내렸던 작위를 계승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사지절 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使持節 都督 百濟諸軍事 鎭東大將軍 百濟王)으로 책봉이 되었다.

【기원후 433년】

  • 비유왕 7년, 신라에 사자를 보내 화친을 요청해, 선물의 교환을 통해서 신라의 수호가 성립하여, 553년까지 동맹 관계가 이어지게 되었다. 중국 남조, 송, 신라, 왜국의 협조 체제를 가지고, 북조, 북위와 연결한 고구려에 반항하는 태세로 만들었다.

【기원후 455년】

  • 9월에 사망했다.
  • 비유왕은 반란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삼국사기》에는 비유왕 대의 반란 기사가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으나, 왕이 죽기 직전에 흑룡이 나타났다는 기사가 있는 등 왕의 죽음을 암시하는 부분들이 있다.
  • 왕이 죽은 직후(455년 10월)에 고구려가 백제에 침입했을 때에는, 신라에서는 백제를 구원하는 정예군이 파견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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