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 [神德王, AD. ?~917] 신라 제53대 국왕(AD. 912~917)

신덕왕 [神德王, AD. ?~917] 신라 제53대 국왕(AD. 912~917)


【개인 정보】

  • 이름 : 박경휘(朴景暉)
  • 출생 : 미상
    사망 : 기원후 917년 7월(음력)
    재위 : 기원후 912년 4월(음력) ~ 917년 7월(음력)
  • 전임 : 효공왕
    후임 : 경명왕

【가계 정보】

아달라왕의 원손이라는 혈연이 친가쪽인지, 외가쪽인지는 《삼국사기》 본기와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록이 서로 다른데,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신덕왕이 아달라왕과 모계로 이어진 자손이라고 하였고,《삼국사기》에 신덕왕의 아버지라고 기록된 예겸에 대해서도 《삼국유사》는 의부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덕왕의 성씨를 박씨라고 한 점에 대해 신덕왕의 누이가 효공왕의 비가 된 것을 계기로 김씨에서 박씨로 성을 바꾸었다는 견해가 있다.

  • 외증조할아버지 : 박원린(朴元隣) 각간(角干) – 아달라왕의 원손
  • 외할아버지 : 박순홍(朴順弘) 각간(角干) – 성무왕(成武王)으로 추봉
  • 할아버지 : 박문관(朴文官) 해간(海干)
  • 아버지(양부) : 박예겸(朴乂兼 또는 朴銳謙) – 흥덕왕의 원손, 헌강왕 시기 대아찬(大阿飡)으로 시중이 됨. 선성왕(宣聖王 또는 宣成王)으로 추봉
    아버지(생부) : 박문원(朴文元) 이간(伊干) – 흥렴왕(興廉王)으로 추봉
    어머니 : 정화부인(貞和夫人) 또는 진화부인(眞花夫人)

    • 왕후 : 의성왕후 김씨(義成王后 金氏) – 헌강왕의 딸이자 효공왕의 이복 누나.
      • 아들 : 경명왕 박승영(朴昇英)
      • 아들 : 경애왕 박위응(朴魏膺)
      • 아들 : 박효렴(朴孝廉)
      • 아들 : 박연식(朴硏植)

【신덕왕 연보】

【기원후 912년】 신덕왕 원년

  • 신덕왕(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경휘(景暉)이고, 아달라왕(阿達羅王)의 먼 후손이다. 아버지는 예겸(乂兼)[‘예겸(銳謙)’이라고도 한다.]이다. 그는 정강대왕(定康大王)을 섬겨 대아찬이 되었다. 어머니는 정화부인(貞和夫人)이다. 왕비는 김씨이니, 헌강대왕(憲康大王)의 딸이다. 효공왕(孝恭王)이 돌아가셨으나 아들이 없어 나라 사람들이 추대하여 왕위에 올랐다.
  • 5월, 아버지를 선성대왕(宣聖大王)으로 추존하고, 어머니를 정화태후(貞和太后)로 삼고, 왕비를 의성왕후(義成王后)로 삼았다. 아들 승영(昇英)을 왕태자로 삼았다. 이찬 계강(繼康)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기원후 913년】 신덕왕 2년

  • 여름 4월, 서리가 내리고 지진이 났다.

【기원후 914년】 신덕왕 3년

  • 봄 3월, 서리가 내렸다.
  • 궁예가 연호 수덕만세(水德萬歲)를 고쳐 정개(政開) 원년으로 삼았다.

【기원후 915년】 신덕왕 4년

  • 여름 6월, 참포(槧浦)의 물과 동해의 물이 맞부딪쳐서 물결 높이가 20장 가량 되었다가 사흘 만에 그쳤다.

【기원후 916년】 신덕왕 5년

  • 가을 8월, 견훤이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 겨울 10월, 지진이 났는데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기원후 917년】 신덕왕 6년

  • 봄 정월, 태백(太白, 금성)이 달을 침범하였다.
  • 가을 7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신덕(神德)이라 하고, 죽성(竹城)에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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