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왕 [神武王, AD. ?~839] 신라 제45대 국왕(AD. 839)

신무왕 [神武王, AD. ?~839] 신라 제45대 국왕(AD. 839)


【개인 정보】

  • 이름 : 김우징(金祐徵)
  • 출생 : 미상
    사망 : 기원후 839년 7월 23일(음력)
    재위 : 기원후 839년 1월 19일(음력) ~ 기원후 839년 7월 23일(음력)
  • 전임 : 민애왕(閔哀王)
    후임 : 문성왕(文聖王)

【가계 정보】

  • 증조부 : 원성왕(元聖王, ?~798/799 재위 : 785~798)
    증조모 : 숙정왕후 김씨(淑貞王后 金氏) – 각간 신술(神述)의 딸
  • 조부 : 김예영(金禮英) – 혜강왕(惠康王)에 추봉
  • 아버지 : 김균정 – 성덕왕(成德王)에 추봉
    어머니 : 정교부인 박씨(貞矯夫人 朴氏) – 헌목태후(憲穆太后)로 봉해짐
  • 이복동생 : 헌안왕(憲安王, ?~861, 재위 : 857~861)
  • 왕비 : 정계부인(貞繼夫人) – 정종태후(定宗太后)로 추봉
    • 장남 : 문성왕 경응(慶膺) : 839년 태자 책봉, 같은 해 문성왕 즉위
    • 차남 : 김영광(金英光) 연안 김씨의 시조
    • 삼남 : 김흥광(金興光) 광산 김씨의 시조
    • 사남 : 김익광(金益光) 영산 김씨의 시조
    • 딸 : 광화부인(光和夫人)
      부마 : 김계명(金啓明)

      • 외손 : 경문왕(景文王)
      • 외손 : 김위홍(金魏弘)
    • 딸 : 김씨(金氏)
      부마 : 김경주(金擎柱) – 김유신의 5대손

      • 외손 : 김성해(金成海)

【신무왕 연보】

【기원후 839년】 신무왕 원년

  • 신무왕(神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우징(祐徵)이다.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손자인 상대등 균정(均貞)의 아들이며, 희강왕(僖康王)의 사촌 동생이다. 예징(禮徵) 등이 궁중을 깨끗이 숙청하고, 예절을 갖추어 그를 맞이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의 조부인 이찬 예영(禮英)[혹은 효진(孝眞)이라고도 한다.]을 혜강대왕(惠康大王)으로 삼아 추존하고, 아버지를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삼고, 어머니 박씨 진교부인(眞矯夫人)을 헌목태후(憲穆太后)로 삼고, 아들 경응(慶膺)을 태자로 삼았으며, 청해진 대사 궁복(弓福)을 감의군사(感義軍使)로 삼고 식읍 2천 호를 주어 봉하였다.
  • 이홍(利弘)은 두려워 처자식을 버리고 산림으로 도망하였으나, 임금이 기병을 보내 쫓아가서 잡아 죽였다.
  • 가을 7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치청절도사(淄靑節度使)에게 노비를 주었다. 황제가 이를 듣고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고 불쌍히 여겨 조칙을 내려 노비들을 귀국하게 하였다.
  • 임금이 병으로 누웠는데, 꿈에 이홍이 활을 쏘아 임금의 등을 맞혔다. 임금이 잠에서 깨어보니 등에 종기가 나 있었다.
  • 이달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신무(神武)라 하고,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 지냈다.
  • 사관이 논평한다.
    구양자(歐陽子)가 말하기를, “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은공(隱公)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요, 선공(宣公)은 자적(子赤)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이며, 정(鄭)나라 여공(厲公)은 세자 홀(忽)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요, 위(衛)나라 공손표(公孫剽)는 자기 임금 간(衎)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이다. 공자가 『춘추(春秋)』에 모두 그들이 임금이 된 사실을 빠뜨리지 않고 각각 사실대로 전한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를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네 왕의 죄는 사람들의 귀를 가릴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사람들이 악한 행동이 거의 없어지기를 바란 것이다.”고 하였다. 신라의 언승(彦昇)은 애장왕(哀莊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김명(金明)은 희강왕(僖康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우징은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지금 이러한 사실을 모두 기록하는 것도 또한 『춘추』의 뜻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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