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가발루스 [Elagabalus, AD. c.204~222] 로마 제국 제23대 황제(AD. 218~222)

엘라가발루스 [Elagabalus, AD. c.204~222] 로마 제국 제23대 황제(AD. 218~222)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

【개인 정보】

  • [이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 [출생 이름] 섹스투스 바리우스 아비투스 바시아누스(Sextus Varius Avitus Bassianus)
  • [별명]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헬리오가발루스(Heliogabalus)
  • [출생] 기원후 204년경, 시리아 에데사 혹은 이탈리아 로마
  • [사망] 기원후 222년 3월 13일, 이탈리아 로마
  • [통치] 기원후 218년 3월 16일 ~ 222년 3월 13일
  • [전임] 마크리누스(Macrinus, AD. c.165~218) : 로마 제국 제22대 황제(AD. 217~218)
  • [후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AD. 208~235) : 로마 제국 제24대 황제(AD. 222~235)

【가족 관계】

  • [외할머니] 율리아 마에사(Julia Maesa)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황후 율리아 돔나(Julia Domna)의 동생
  • [아버지] 섹스투스 바리우스 마르켈루스(Sextus Varius Marcellus)
  • [아버지] 카라칼라(Caracalla) – 어머니인 율리아 소아에미아스 바시아나가 카라칼라와 관계를 맺어 엘라가발루스를 낳았다고 주장(불륜을 주장하며 황제의 정당성을 확보함)
  • [이모] 율리아 아비타 마마에아(Julia Avita Mamaea)
  • [이모부] 마르쿠스 율리우스 게시우스 마르키아누스(Marcus Julius Gessius Marcianus)
  • [아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 후에 엘라가발루스의 양자가 됨
  • [어머니] 율리아 소아에미아스 바시아나(Julia Soaemias Bassiana)
  • [본인]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 [배우자] 율리아 코르넬리아 파울라(Julia Cornelia Paula)
    • [배우자] 아퀼리아 세베라(Aquilia Severa) : 가이우스 율리우스 세베루스(Gaius Julius Severus)의 딸
    • [배우자] 안니아 아우렐리아 파우스티나(Annia Aurelia Faustina) :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프로쿨루스(Tiberius Claudius Severus Proculus)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외손녀 안니아 파우스티나(Annia Faustina)의 딸
    • [배우자] 히에로클레스(Hierocles) : 엘라가발루스의 남자 연인

【엘라가발루스의 생애】

【출생과 가족】

  • 엘라가발루스는 기원후 204년경 섹스투스 바리우스 마르켈리우스(Sextus Varius Marcellus)와 율리아 소아에아스 바시아나(Julia Soaemias Bassiana)의 아들로 태어났다. 율리아 소아에미아스는 황제 카라칼라의 사촌이었으며, 엘라가발루스는 카라칼라의 자식이었다는 소문으로 황제가 될 수 있었다.
  • 엘라가발루스의 외할머니 율리아 마에사(Julia Maesa)는 율리우스 아비투스 알렉시아누스(Julius Avitus Alexianus)의 미망인으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황후 율리아 돔나(Julia Domna)의 동생이었다.
  • 엘라가발루스는 이모인 율리아 아비타 마마에아(Julia Avita Mamaea)와 이모부 마르쿠스 율리우스 게시우스 마르키아누스(Marcus Julius Gessius Marcianus),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가 있었다.

【태양신의 제사장】

  • 엘라가발루스의 가족은 태양신 엘라가발의 제사직을 세습적으로 이어갔다. 엘라가발루스는 로마 시리아에서 에메세네 왕조(Emesene dynasty)의 일원으로 엘라가발의 대제사장이었다. 이 신의 라틴어 이름인 ‘엘라가발루스’는 아랍어 이라훌 알-자발(Ilāh al-Jabal)의 라틴어화된 형태로, 여기서 ‘이라훌’은 “신”을 의미하고, ‘자발’은 “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산의 신”(God of the Mountain)이라는 의미를 지녔으며, 이 신은 에메세네 왕조에서는 바알 숭배와 동일시 되었었다.
  • 카라칼라 황제가 젊었기 때문에, 엘라가발루스의 어머니인 소아이미아스는 제위가 아들한테 굴러들어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엘라가발루스는 제사장이 되기 위한 교육만 받은 것 같다. 시리아식 이름인 엘라가발루스는 ‘성소를 관리하는 자’라는 뜻이었다. 황제가 된 뒤에도 그는 태양신을 모시는 제사장의 신분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비정상적 오리엔트 군주】

  • 그가 처음에 원로원에게 보낸 서신에는 미덕과 온화함으로 가장한 말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마르쿠스 황제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빛나는 모범을 통치의 대원칙으로 삼겠다고 섰다.
  • 이름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로마 황제라기보다 오리엔트 군주를 연상시켰다. 황제 일행이 로마에 도착한 것은 시리아를 떠난 지 무려 1년 5개월이 지난 이듬해 가을이었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오리엔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각에 의한 평가인 듯하다. 엘라가발루스는 오리엔트 군주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오리엔트 군주라고 언급되어야 한다.

【제국에 태양신을 들여오다】

  • 219년 9월 29일, 에메사의 신전에 안치되어 있던 태양신의 신체(神體)를 가지고 로마에 입성했다. 인간의 나체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믿었던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그만한 가치는 오직 신에게만 바쳐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신은 모두 나체로 표현되어 있었다. 따라서 죽은 뒤에 신격화한 황제들도 나체로 표현된다. 발가벗은 황제상이 있으면, 그것은 그 황제가 죽은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반드시 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로마인에게 원뿔 모양의 검은 돌은 처음이었다.
  • 엘라가발루스는 태양신전을 건립하려고 했고, 콜로세움이 바라보이는 팔라티노 언덕 한 귀퉁이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오리엔트에서는 신전의 여사제들이 참배하는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이 당연했고, 그것은 로마인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 엘라가발루스의 동성애적 성향이 노골적이 되자 로마인들은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평온한 제국, 방탕한 생활】

  • 엘라가발루스가 4년간 제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국경 바깥쪽에서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파르티아 왕국은 자신들의 국내 사정이 절박해서 외부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북방 야만족은 카라칼라가 정비한 방위선을 뚫고 내려오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했다.
  • 엘라가발루스는 갑작스런 행운에 의해 타락한 때문인지 아무런 절제 없이 저열한 쾌락에 심취했다. 엘라가발루스는 국민들의 재산을 흥청망청 무절제하게 낭비했는데, 그 자신과 아첨꾼 무리들은 그것이 소심한 전임 황제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호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칭찬까지했다.

【불안한 제위를 감지한 율리아 마이사】

  • 최고권력자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은 경박한 언동으로 남의 경멸을 샀을 때다. 카라칼라 황제의 형편없는 아들을 황제 자리에 올려놓은 방탕하고 오만한 병사들도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선택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병사들은 그 괴물 같은 황제에게서 등을 돌리고 마마이아의 아들인 사촌 알렉산데르의 미덕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영악한 할머니 율리아 마이사가 그것을 예측했던 것 같다.
  • 221년,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가 황제에게 네 살 아래인 사촌동생 알렉산데르를 ‘카이사르’로 삼으라고 권했다. 복잡한 정무는 알렉산데르에게 맡기고 태양신의 제사장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알렉산데르에게 카이사르 칭호를 준다는 것은 곧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뜻이다. 열일곱 살의 황제는 열세 살의 알렉산데르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라는 이름으로 원로원에 정식으로 소개했다.

【알렉산데르를 제거하려다 본인이 제거당하다】

  • 그러나 곧 너무 일찍 차기 황제를 결정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근위대 사령관을 불러 알렉산데르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사령관이 근위병들에게 명령한 것은 알렉산데르가 아니라 엘라가발루스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 222년 3월 11일 열여덟 살의 황제는 황궁에서 붙잡혀 병사들의 조롱을 받으며 살해되었다. 시신은 팔라티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로로 질질 끌려가, 그곳에서 다시 시민들의 비웃음을 충분히 받은 뒤 테베레 강까지 끌려가 다리 위에서 강물 속으로 던져졌다. 어머니인 소아이미아도 이때 함께 살해되었다.
  • 엘라가발루스의 죽음과 함께 수도 로마의 태양신앙과 오리엔트 스타일도 사라졌다. 팔라티노 언덕에 세웠던 태양 신전은 유피테르 신전으로 바뀌었다. 다신교는 남이 믿는 종교도 용인한다. 다른 종교를 용인하는 이상, 남의 신앙 대상을 파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엘라가발루스가 가지고 왔던 태양신의 신체는 시리아의 에메사 신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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