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오 1세 [Victor I, AD. 140~199] 제14대 로마 교황(AD. 189~199)

빅토리오 1세 [Victor I, AD. 140~199] 제14대 로마 교황(AD. 189~199)

 

【개인 정보】

  • 이름 : 빅토리오 1세
    라틴어 : Victor I (빅토르 1세)
    이탈리아어 : Vittore I
    영어 : Pope Victor I
  • 출생 : 기원후 140년 또는 160년, 아프리카 렙티스 마그나(Leptis Magna)
  • 사망 : 기원후 199년, 이탈리아 로마

【로마 교황 : 제14대】

  • 시작 : 기원후 189년
  • 종료 : 기원후 199년
  • 전임자 :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AD. ?~189) 재위 : 174~189년
  • 후임자 : 제피리노(Zephyrinus, AD. ?~217) 재위 : 199~217년
  • 축일 : 7월 28일 또는 1월 11일

아프리카 태생의 교황 빅토리오(라틴어로는 빅토리우스)는 동방 교회의 전통보다 서방 교회의 전통을 지지했다. 하나의 예로 그는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부활 대축일을 로마 교회의 전통에 따라 특정 일요일에 거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때까지 소아시아에서는 부활 대축일을 매주 거행하든지 아니면 특정 요일과 상관없이 정해진 날짜에 거행했었다. 주교회의(시도느)가 동방과 서방의 그리스도교 주요 거점에서 일제히 소집되었다. 그 결과 서방에서는 빅토리오 1세의 의견에 찬성하는 반면 동방은 반대했다. 교황은 소아시아 교회들의 반대에 격분했고 급기야는 그들을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엄청난 권력과 권위의 행사이며, 교황권이 얼마나 커졌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빅토리오 1세가 교황이 되기 전만 해도 로마 교회와 소아시아 교회들 간에는 예수 부활 대축일 기념 날짜 차이가 있었으며, 양측은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여 모두를 허용하였다. 소아시아 교회에서는 유대인의 과월절 전날인 유대인 달력 니산 달(1월) 제14일을 (주중의 무슨 요일이든 상관없이) 예수 부활 대축일로 기념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과월절 축제 전의 금요일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서방 교회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십사일 주창자(十四日主唱者, Quartodecimans)’라고 불렀다. 이에 반해 로마를 포함하여 서방 교회에서는 니산 달 제14일 다음 주일을 예수 부활 대축일로 기념하였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모든 주교가 로마에 모여 회의를 한 후 주일에 지키도록 합의를 보았으나 에페소스의 폴리크라테스가 주도하는 소수의 주교들이 이에 반대하였다. 빅토리오 1세는 폴리크라테스를 파문하고 관계를 끊으려고 하였으나, 여러 주교들, 특히 이레네오의 주장을 받아들여 회의를 조용히 끝냈다. 이레네오의 주장은 십사일 준수는 이름 있는 여러 교회가 초창기부터 지켜 온 관습이므로 이를 강제로 폐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빅토리오 1세는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로마 황제의 가족과 교제한 인물이며 사르데냐의 광산에서 고생하던 신자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기독교 신자였던 마르치아 황후의 도움으로 그들을 모두 해방시켜 주었다.

일각에서는 빅토리오 1세가 최초의 흑인 교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