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宣宗, AD. 1049~1094] 고려의 제13대 국왕(재위 : 1083~1094)
선종(宣宗, 1049~1094)은 고려의 제13대 국왕(1083~1094)는 문종과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국원공에 책봉되었다가 친형 순종이 3개월만에 요절하여 왕위를 계승하였다. 아버지 문종 못지 않은 훌륭한 국왕이자 명군이였다.
【출생 이후 즉위 이전까지】
【기원후 1049년】 출생하다
- 9월 10일(음력), 경자일에 태어났다. 고려 문종의 둘째 아들로 인예왕후 소생이었다. 처음 이름은 증(蒸) 또는 기(祈)이다. 글을 잘 썼고 시도 잘 지었다.
【기원후 1083년 이전】 국원봉에 봉해졌다.
- 부왕 문종에 의해 국원공(國原公)에 봉해졌다.
【즉위 이후 말년까지】
【기원후 1083년】 왕위를 계승하다
- 1083년 형 순종이 병약하여 재위 3개월 만에 병사하자 바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 선종의 집권기는 불교와 유교의 균형적인 발전을 토대로 매우 안정되었으며, 외교에서도 거란을 포함한 송, 일본, 여진 등과 광범위한 교역을 추진하며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기원후 1084년】 승과를 설치하고 불교를 장려하다
- 1084년(선종 1년)에는 승과를 설치하고 불교를 장려하였으며, 변경을 지키는 사졸들에게 저고리와 바지를 하사하였다.
【기원후 1085년】 대각국사 의천이 귀국하다
- 1085년(선종 2년) 왕의 아우 의천(義天)이 몰래 송나라에 들어가 2년 동안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오자 송나라에서 항의하였으나 선종은 사절을 보내 이를 무마시켰다. 의천을 태운 배가 예성강 포구에 도착하자 선종은 친히 마중나가 환영의식을 성대하게 하였는데 의천은 불경과 경서 1,000권을 바쳤고,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며, 송, 요, 일본 등지에서 서적을 사들여 거의 4,000여 권에 달하였는데 모두 간행하게 하였다.
【기원후 1087년】 초조대장경 조판 사업
- 1087년(선종 4) 현종 때부터 시작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조판 사업이 일단락되었다.
【기원후 1089년】 회경전 13층 금탑, 국청사를 짓게 하다
- 1089년(선종 6년) 회경전에 13층 금탑을 세우고, 문종의 둘째 비인 인예왕후의 청에 따라 천태종(天台宗)의 중심사찰인 국청사를 짓게 하였다.
【기원후 1091년】 국학에 72현의 상을 그리다
- 1091년(선종 8년) 예부의 주장으로 국학에 72현의 상을 벽에 그려 붙였는데, 그 차례는 송나라 국자감의 예를 따르고, 그 복장은 10철(十哲)을 모방하게 하였다.
【기원후 1092년】 병이 들어 약을 먹고 시를 짓다
- 1092년(선종 9년) 병이 들어 의원이 처방한 약을 먹고 문득 시를 지었는데 “약효가 있고 없음이야 무엇을 염려하랴. 덧없는 인생 시작이 있었으니 어찌 끝이 없으리. 오직 원하는 것은 여러 가지 선행을 닦아 청청한 곳에 올라 부처에게 예를 드림이네.”라는 구절이 있어 만백성이 안타까워 하였다.
【기원후 1094년】 승하하다.
- 1094년(선종 11년) 2월, 열병식을 한 뒤 5월에 연영전(延英殿)에서 향년 46세로 승하하였다. 능은 개성 성동(城東)에 있는 인릉(仁陵)이며, 시호는 사효(思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