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神宗, AD. 1144~1204] 고려의 제20대 국왕(재위 : 1197~1204)

신종 [神宗, AD. 1144~1204] 고려의 제20대 국왕(재위 : 1197~1204)

신종(神宗, AD. 1144~1204은 고려의 제20대 국왕(재위 : 1197~1204)으로 인종(仁宗)과 공예왕후(恭睿王后) 임씨(任氏)의 다섯째 아들로 의종과 명종의 동생이다. 명종이 최충헌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창락궁에 유폐되자,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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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후 즉위 이전까지】

【기원후 1144년】 출생하다

  • 1144년(인종 22년) 7월 11일(음력), 인종과 공예왕후 임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인종과 공예왕후에게는 아홉 번째 자녀이며 막내이기도 하다.

【기원후 1154년】 평량후로 책봉되다

  • 1154년(의종 8년) 평량후(平涼侯)로 책봉되었다. 봉지인 ‘평량’(平凉)은 옛 고구려의 평원군이었으며, 신라의 북원소경이기도 했다. 평량은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이다.

【기원후 1170년】 무신정변이 일어나다

  • 1170년 8월 무신정변이 일어나 첫째형 의종이 폐위되었고, 셋째형 명종이 왕위에 올랐다.

【기원후 1182년】 평량공에 봉해지다

  • 1182년(명종 12년) 평량공(平凉公)에 봉해졌다.
  • 넷째형 충희가 사망했다. 원경국사 충희는 왕가를 떠나 승려가 됐지만, 좋지 않은 행보를 보여줬다.

【즉위 이후 사망까지】

【기원후 1197년】 최충헌이 명종을 폐하고 즉위시키다

  • 1197년(명종 27년) 9월, 최충헌 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54세의 평량공을 사저에서 데려와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시켰다. 대관전(舊 천덕전)은 본궐의 제2정전인데, 형 명종이 즉위한 곳이기도 했다.
  • 1197년 10월 신종은 휘를 ‘민’(旼)에서 ‘탁’(晫)으로 개명했는데, 왜 바꿨냐면 ‘민’(旼)이 금나라 태조 완안아골타의 한자식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려의 금나라에 대한 반감을 엿볼 수 있는데 상국으로 받드는 금나라 태조의 이름을 고려 왕자의 이름으로 쓴 것으로 피휘를 안했던 것이다

【기원후 1198년】 산천비보도감을 두다. 만적의 난 등의 민란이 발생하다

  • 1198년(신종 1년),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 민가의 안대(安碓)를 금지하였다. 같은 해 만적의 난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에는 명주(강릉)와 동경(경주), 뒤이어 진주와 전주, 합주(합천)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기원후 1199년】 최충헌이 모든 실권을 장악하다

  • 1199년(신종 2년), 최충헌이 문무관의 인사행정을 도맡았는데 이로부터 모든 실권은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해에 수양장도감(輸養帳都監)과 오가도감(五家都監)을 두었다.

【기원후 1200년】 ‘궁주 원비’ 책봉, 왕태자 책봉

  • 1200년 왕후를 ‘궁주 원비’(宮主 元妃)로 책봉하는 한편 맏아들의 이름을 ‘왕연’(王淵)에서 ‘왕덕’(王悳)으로 바꾼 뒤 왕태자(王太子)로 봉했다.

【기원후 1202년】 탐라에서 반란이 일어나다

  • 1202년(신종 5년), 탐라(제주도)에서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소부소감(少府少監)인 장윤문(張允文)과 중랑장(中郞將) 이당적(李唐積)을 안무사(安撫使)로 보내어 평정하였다.

【기원후 1204년】 태자에게 양위하다

  • 1204년(신종 7년), 등창이 심하여 태자에게 양위하였다.
  • 퇴위한지 8일만인 1204년 1월 13일, 향년 59세를 일기로 붕어했다. 묘호는 신종(神宗), 시호는 경공정효(敬恭靖孝)이며 능은 개풍군 청교면에 위치한 양릉(陽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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