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인간의 출현과 진화, 아프리카에서 세계로
☞ [참고] 인간의 기원, [38억 년 전 ~ 1만 년 전]
【700만 년 전, 최초의 인류의 조상이 나타나다】
인간과 다른 유인원의 DNA와 혈액 단백질의 차이는 인간의 혈통이 800만 년 전과 600만 년 전 사이에 존재했던 침팬지의 혈통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만 몇 안되는 화석 표본에서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 700만~600만 년 전), 오로린 투게넨시스(Orrorin Tugenensis, 610만~500만 년 전),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Ardipithecus Kadabba, 580만~520만 년 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 440만 년 전) 등으로 인류의 조상에 관한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이 모든 종들은 우리처럼 두 다리로 걸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어느 종이 현생인류의 조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종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그 종들은 각각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떨어져 있고 흔히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화석들이 어느 종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또는 그 종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화석들은 인간과 침팬지가 공유하는 최후의 공통 조상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몇몇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에 속하는 종들은 420만~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그들을 대부분 두 다리로 걸었지만 몸집이 자그마한 편이고 유인원처럼 생겼으며 부분적으로 나무에서 살았다. 어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들은 도구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초기의 석기는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260만 년 전의 것으로, 석기가 잘려나간 흔적이 있는 뼈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ethecus Afarensis)에 가까운 원인들과 관련되어 있다.
【파란트로쿠스,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하빌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의 후손들을 두 가지 뚜렷한 생활방식을 따랐다. 즉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속 원인들은 질긴 야채를 먹기 위해 거대한 턱과 큰 이빨을 지닌 반면,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와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죽은 육식 동물을 찾아내 뼛속의 단백질이 풍부한 골수를 얻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면서 더 많은 단백질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파란트로푸스군(群)의 생활방식은 성공하지 못하고 약 120만 년 전 이후 멸종되었지만 그들의 친척뻘되는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두돌펜시스는 더 오래 살아남았다. 이 초기 인류의 종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와 별 차이가 없었다.
【호모 에르가스테르】 180만 년 전
인간에 더욱 가까운 모습을 띠기 시작했던 인류의 조상은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180만 년 전)였다.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키가 크고 몸집이 호리호리했으며, 또한 몸에 털이 많지 않았던 최초의 호미닌(Hominin, 초기 인류, 인간과 인류의 조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 용어)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뇌는 조상들의 뇌보다 컸으며, 또한 나무에 오르는 것을 잊어버리고 걷고 달리는 데 완전히 적응하게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 170만 년 전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나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호미닌은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넘어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호모 게오르기쿠스(Homo Georgicus)라는 종이 170만 년 전에 조지아의 드마니시(Dmanisi)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또 다른 가까운 종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아마도 곧이어 중국과 인도에서 살았을 것이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호미닌의 초기 집단들이 또한 아프리카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두개골의 일부와 이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의 리앙 부아(Lian Bua) 유적지에서 발견된 [현재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로 알려진] 두개골의 일부가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루돌펜시스의 두개골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더 먼 북쪽의 생활에는 아프리카의 대초원에서 살기 위해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기후는 더욱 시원했고 환경은 1년 동안 내내 식량자원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는 여러 계절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식용식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호미닌은 음식으로 동물 단백질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 치열하게 경쟁했을 것이다. 그들은 더 먼 거리로 이동하고 이런 지역에서 살아남고자 자원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함께 일할 필요가 있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
호모 에르가스테르와 호모 에렉투스가 만든 아슐리안의 주먹도끼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만들어졌는데, 이는 서로에게 복잡한 기술을 배우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런 도구를 만들이 귀해, 돌을 깨는 이들은 적합한 돌을 고르고 돌을 깨는 방법과 위치를 위해 미리 몇 가지 단계를 생각해내야 했다. 주먹도끼는 도축을 포함한 넓은 범위의 활동을 위해 사용되었지만 또한 제작하는 이들의 힘과 기술을 입증하는 등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위해 중요했을 것이다.
【호모 안테세소스】 12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아시아에서 계속 번성했지만, 호모 안테세소스(Homo Antecessor)는 120만 년 전까지 스페인 북부와 이탈리아 같은 멀리 서쪽 지역에 나타났다. 스페인의 아타푸에르카(Atapuerca) 유적지에서 발견된 그들의 뼈에 나타난 흔적은 식인행위를 암시한다. 하지만 이 초기 거주민들은 이런 낯선 환경에서 번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60만 년 전
60만 년 전까지 새로운 호미닌 종으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가 유럽 전역에 훨씬 더 많이 퍼져있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능숙한 사냥꾼이었거나 적어도 죽은 동물을 먹는 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35만 년 전
약 35만 년 전까지 호모 에렉투스는 계속 동아시아를 지배했지만 유럽과 서아시아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로 진화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현대 인류보다 더욱 강하고 다부진 체격이었고 그들의 뇌는 현대 인류와 형태가 약간 달랐지만 거의 확실히 뛰어난 사냥꾼들이었다. 또한 석기를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말과 들소 같은 크고 위험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무거운 창을 사용하는 데 능숙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은 의식적인 관행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을 시신 매장 풍습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대 인류처럼 이상적인 예술을 창조하거나 어떤 상징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현대 인류와 유사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는지의 여부도 밝혀내기가 어렵다. 네안데르탈인들의 목과 후두 구조를 보면 그들의 언어를 현대 인류의 언어와 비교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그들은 분명 거의 단순한 형태의 발성과 몸짓을 결합했을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아프리카에서 세계로 퍼져나감】
골격과 DNA 증거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진화하여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아프리카에서 확산된 현생 인류 최초의 흔적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화석과 아라비아에서 발견된 석기에서 비롯된다. 그 흔적들은 10만 년 전보다 훨씬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호모 사피엔스의 정착화는 어떤 지역에서는 여러 집단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쇠퇴하고 새로 시작하거나 때로는 거주지에서 물러나는 일 등으로 이루어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서아시아의 지중해 연안지역을 통해 유라시아로 이동하여 3만 5천 년 전에 서유럽까지 퍼졌을 것이다. 고고학에서는 사람들이 아라비아에서 서아시아로 이동한 ‘남쪽 경로’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한다. 또한 석기가 7만 7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인도에서, 그리고 7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말레이시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훨씬 이전에 동쪽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남부에서 발견된 어떤 호모 사피엔스는 6만 8천 년 전(류장)이나 심지어 10만 년 전(지렌동)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유물들은 논란이 많고, 대부분 학자들은 그 이후의 연대를 선호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널리 정착한 것은 6만 년 전, 혹은 4만 5천 년 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먼 북쪽으로는 호모 사피엔스가 약 3만 5천 년 전 유라시아 북부 전역에 퍼졌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빙하시대에 후퇴했을 것이고 1만 4천 ~ 1만 3천 년 전 이후까지 그 지역에서 다시 거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볼 때, 북아메리카 거주민들은 동아시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베링기어’(Beringia, 현재는 시베리아와 알레스카 사이의 베링 해협 밑에 있지만 마지막 빙하시대의 절정기에는 낮은 해수면으로 노출되었던 것)의 평원 전체로 이주했을 것이다. 약 1만 2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양끝이 갈라진 독특한 ‘클로비스’(Clovis) 창끝이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현생 인류는 그 시점에서 퍼지게 되었지만, 몬테 베르데(Monte Verde, 1만 5천 500 ~ 1만 5천 년 전)와 같은 남아메리카 유적지를 포함한 장소들은 연대가 더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호미닌(초기 인류)의 화석에는 약 4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사피엔스의 골격 특성이 드러난다. 즉 눈 위의 뼈가 조금 융기된 것과 두개골과 턱이 더욱 크고 둥근 것이 특징이었다. 현생 인류의 DNA 분석을 통해(‘미토콘드리아 이브’로 알려진) 모든 현생 인류의 공통 조상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 16만 년 전
16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에티오피아의 화석 두개골은 형태가 거의 현생 인류와 비슷하다. 이는 현생 인류의 아종인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Homo Sapiens Idaltu)로 확인되었다. 현생 인류가 10만 년 전 어떤 시기에는 북쪽에서 서아시아로 이주했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토바 화산 폭발, ‘화산 겨울’】 7만 4천 년 전
상징을 사용하는 능력과 언어 같은 독특한 인간의 행동이 해부학적으로 현생 인류 이전에 진화되었는지 이후에 진화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 이론에서는 그런 행동들이 7만 4천 년 전 이후가 되어서야 중요하게 되었다고 제시한다. 그 당시에는 인도네시아의 토바 화산이 대폭발하여 세계적으로 ‘화산 겨울’(volcanic winter)이 생겼을 때였다. DNA 분석 결과, 인류 집단들은 대부분 그 시기에 멸종되었으며,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복잡한 현대식 언어와 상징체계로 서로 자원과 정보를 교환했을 것이고, 이로써 생존과 멸종의 기로에 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론에 따르면, 토바 화산의 분출로 인한 영향은 과장된 것이고 또한 아프리카의 고고학 증거는 이전에도 복잡한 사냥관습과 상징체계가 발달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유라시아로 퍼져나간 현생 인류】
현생 인류가 최초로 유라시아로 퍼졌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주장에 따르면, 현생 인류는 7만 4천 년 전 아라비아를 떠났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그런 주요 이주 현상이 이후 5만 년 전에 일어났으며, 복잡한 도구의 일부였을 길고 얇은 부싯돌용 ‘돌낫’ 등 새로운 형태의 석기기술이 개발된 이후 서아시아를 경유하여 이주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생 인류는 유럽과 아시아 전역으로 급속히 퍼졌다. 유럽에서는 현생 인류가 4만 년 전 터키에서 나타났고 서유럽에서도 곧 나타났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이 적어도 4만 2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현생 인류가 4만 5천 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아시아 최초의 현생 인류가 적어도 4만 년 전까지 중국에 생존했던 호모 에렉투스의 집단과 마주쳤을 것이라고 암시되는 흔적들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 상황이 훨씬 더 복잡했다. 플로레스 섬(Flores)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3만 8천 년 전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며, 극히 작은 형태로 분화된 호모 에렉투스나 초기 호미닌의 후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증거들이 러시아의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에서 나왔다. 여기에서 발견된 뼈의 DNA 분석 결과, 이는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것과 유전형질에서 차이가 났으며 약 4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몇몇 집단들은 호모사피엔스가 이 시기에 유라시아에서 공존하기 전 아프리카를 떠난 호미닌의 후손이라는 가능성이 더욱 큰 것처럼 보인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공존】
유럽에서는 현생 인류가 나타난 시기가 적어도 3만 년 전까지 생존했던 네안데르탈인과 겹쳤다. 네안데르탈인들이 어떻게 멸종되었는지 고고학에서 가장 강력한 논쟁이 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네안데르탈인들 간의 폭력적인 상호작용의 증거는 거의 없었으며, DNA 비교분석을 통해 집단들 간의 어떤 짝짓기 상호작용으로 멸종했을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초기 인류는 급속히 변화하는 환경에서 식량과 원자재를 얻기 위한 경쟁에서 이겼을 것이다. 그 시대의 환경은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조금의 경쟁 상황도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수는 적고 공간은 넓었기 때문에 초기의 인류는 유럽에서 1만 년 전까지 공존했을 것이고 인도네시아에서는 3만 년 이상 공존했을 것이다. 그 대신에 언어와 상징 사용으로 가능해진 자원과 정보의 교환뿐만 아니라 계획적이고 유연성있는 기술로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열악한 환경을 더욱 견딜 수 있었다.
이런 행동들이 현생 인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미닌은 8만 년 전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 섬에 도달하기 위해 뗏목이나 배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교역하고 그들로부터 모방하거나 심지어 훔쳤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후기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에는 또한 호모 사피엔스와 일반적으로 연관된 기술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환경적인 불안과 늘어난 경쟁의 결합은 현재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했을 가능성의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