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6월 20일】 미합중국 국장(Great Seal)의 탄생과 그 의미
미합중국의 국장(Great Seal of the United States)은 단순한 국가 상징을 넘어 미국의 건국 이념, 정치 철학, 그리고 국가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 국장은 1782년 6월 20일,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으며, 이후부터 현재까지 외교문서, 대통령 선언, 비자 발급 등 국가적 의례와 문서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국장의 역사적 제정 과정과 그 구성요소들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미합중국 국장의 채택이 지닌 학술적, 정치사적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국장 제정의 역사적 배경】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국가인 미합중국이 탄생했다. 독립 선언과 함께, 신생 공화국은 국가의 주권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독립 선언 직후인 1776년 7월 4일, 제2차 대륙회의는 국장 제정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는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등으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다양한 상징과 문장학(Heraldry)에 기반한 도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국장 디자인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닌 국가의 철학과 이상을 담아야 했기 때문에, 논의는 무려 6년에 걸쳐 이어졌다. 첫 번째 위원회의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고, 이후 두 차례의 위원회가 더 구성되었다. 그 결과, 1782년 국무장관 찰스 톰슨(Charles Thomson)이 세 위원회의 아이디어를 종합하여 최종안을 도출했고, 이것이 1782년 6월 20일 대륙회의에서 승인되었다.
【국장의 구성과 상징성】
미합중국의 국장은 양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전면(Obverse)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후면(Reverse)이 존재한다.
전면(Obverse)
전면은 국가의 대표 상징물로 기능하며, 대통령 인장이나 여권, 달러 지폐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 흰머리수리(Bald Eagle) : 미국의 국조이자, 독립과 강인함, 자유의 상징. 수리는 한쪽 발에는 올리브 가지(평화)를, 다른 쪽 발에는 화살 다발(전쟁)을 쥐고 있다. 이는 미국이 평화를 추구하지만, 필요시 무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 방패(Shield) : 수리의 가슴 위에 놓인 방패는 13개의 적색과 백색 줄무늬로 구성되었으며, 상단에는 청색 띠가 있다. 이는 13개 주의 단결과, 연방 정부의 통합적 역할을 상징한다.
- 리본과 문구 : 수리의 부리에는 “E Pluribus Unum(다수로부터 하나)”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힌 리본을 물고 있다. 이는 독립된 여러 주가 하나의 연방으로 뭉쳤음을 나타낸다.
- 별과 광채 : 수리 머리 위에는 13개의 별이 원형을 이루며 빛을 내고 있으며, 이는 신성한 인도와 주의 연합을 표현한다.

후면(Reverse)
후면은 일반적으로 정부 문서에서 사용되지 않으며, 미국 1달러 지폐 뒷면에서만 널리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상징성은 대단히 깊다.
- 미완성 피라미드(Unfinished Pyramid) : 피라미드는 국가의 강건함과 영속성을 상징한다. 1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는 건국 당시의 13개 주를 의미하며, 미완성 형태는 미국의 발전이 계속된다는 미래지향성을 내포한다.
- 상단의 눈(Providence Eye) :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삼각형 안에 그려진 눈이 위치해 있는데, 이는 “섭리의 눈(Eye of Providence)”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신의 감시와 보호, 즉 미국이 신의 뜻 아래 세워졌다는 신념을 표현한다.
- 라틴어 문구 : “Annuit Coeptis(그는 우리의 시도를 지지하셨다)”와 “Novus Ordo Seclorum(새로운 시대의 질서)”라는 문구는 미국 독립과 신생 국가의 이상을 선언적으로 담고 있다.

【정치철학적 함의】
미합중국 국장은 단순한 미적 산물이 아니라, 미국의 공화주의 정신, 자유주의 전통, 그리고 계몽주의 시대의 정치철학을 상징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리의 눈이 왼쪽이 아닌 오른쪽(올리브 가지)으로 향하는 점은 미국이 원칙적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E Pluribus Unum”이라는 문구는 다원성과 통합이라는 미국 정치의 근본 원칙을 반영한다.
피라미드의 이미지는 고대 문명과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동시에, ‘미완성’ 상태를 강조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대한 유토피아적 낙관주의를 드러낸다. 이러한 구성은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이 바랐던 이상국가의 설계도라 할 수 있다.
【국장의 현대적 활용과 계승】
미합중국 국장은 지금도 미국 정부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으로 쓰이고 있다. 대통령의 공식 서한, 외교 문서, 여권, 군기 등 다양한 공식 문서와 상징물에 활용되며, 국장 자체가 일종의 국가 인장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대중문화 속에서도 미국의 권위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이 국장은 민주주의, 자유, 권력의 아이콘으로 기능하고 있다.
【국장 채택의 의미】
1782년 6월 20일의 국장 채택은 단지 하나의 문양이 결정된 사건이 아니라, 신생 국가 미국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국장의 구성요소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미국의 건국 이념, 정치철학,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상징적 의미는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다. 국장은 한 국가의 역사가 문양 속에 어떻게 응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