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오 1세 [Lucius I, ?~254] 제22대 로마 교황(AD. 253~254)

루치오 1세 [Lucius I, ?~254] 제22대 로마 교황(AD. 253~254)

【개인 정보】

  • 이름 : 루치오 1세
    라틴어 : Lucius I
    이탈리아어 : Lucio I
    영어 : Pope Lucius I
  • 출생 : 미상, 로마
  • 사망 : 기원후 254년

【제22대 로마 교황】

  • 시작 : 기원후 253년 6월 25일
  • 종료 : 기원후 254년 3월 5일
  • 전임자 : 고르넬리오 [Cornelius, AD. ?~253] 제21대 교황(AD. 251~253)
  • 후임자 : 스테파노 1세 [Stephen I, AD. ?~257] 제23대 교황(AD. 254~257)
  • 축일 : 3월 5일

【제22대 로마 교황 루치오 1세】

【추방되었다가 로마로 귀환함】

  • 루치오 1세는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포르피리아누스(Porphyrianus)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마도 253년 6월 25일에 전임 교황 고르넬리오가 박해로 추방되었을 때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것이다. 그 역시 서품 직후 추방되었으나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가 취임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완화하면서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다.

【고르넬리오의 정책을 이어받음】

  • 루치오 1세는 키프리안의 여러 편지에서 칭찬을 받았으며, 노바티안의 엄격함에 대해 반대하였다. 이것은 그의 전임자인 고르넬리오의 정책과 같은 것이었다.

【루치오 1세의 축일 : 3월 5일】

  • 교황 루치오 1세의 축일은 3월 5일로 《로마 순교록》에 다음과 같이 기념되고 있다.
    “로마의 아피아 도로에 있는 칼리스투스 묘지에서 성 루치오 교황의 묘소. 그는 성 고르넬리오의 후임자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추방당했고, 어려운 시기에 신앙을 고백하며 탁월한 신앙의 고백자로서 절제와 신중함을 발휘했다.”

【순교에 대한 오해】

  • 《리베르 폰티피칼리스(Liber Pontificalis)》에 잘못 기록된 것과 달리, 그는 실제로 순교하지 않았다. 그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는 254년 3월, 교황 루치오가 사망한 시점 이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무덤과 해골의 여행】

  • 교황 루치오 1세의 묘비는 칼리스투스 묘지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의 유물은 후에 산타 체칠리아 교회(Trastevere)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성 체칠리아와 다른 성인들의 유물과 함께 보관되었다. 그의 머리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성 안스가르 대성당에 있는 성유물함에 보존되어 있다. 이 유물은 1100년경 루치오 1세가 덴마크의 제일란드 지역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된 후 로스크일드로 옮겨졌다. 전통에 따르면, 로스크일드의 아이세피요르드 지역에 악마들이 출몰했으며, 악마들이 루치오 1세의 해골만을 두려워한다는 이유로 그의 해골이 덴마크로 이동했다고 전해진다.
  • 종교개혁 후, 그 해골은 프레데리크 3세(Frederick III of Denmark, 1609~1670, 재위 1648~1670)의 전시실로 옮겨졌고, 28년 동안 전시되었다. 이 해골은 로스크일드 대성당에 보관되었고, 1908년에는 코펜하겐의 국립박물관 소유가 되면서 성 안스가르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루치오 1세와 시구르드의 해골】

  • 교황 루치오 1세의 해골은 덴마크에서 종교개혁을 거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성유물 중 하나이다. 그러나 노르웨이 연구자 외이스테인 모르텐(Øystein Morten)은 루치오 1세의 해골이 노르웨이 왕 시구르드(Sigurd) 십자군(1090-1130)의 해골과 혼동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시구르드 왕의 해골도 1800년대 덴마크 국립박물관에서 보관되었으며, 1867년에 오슬로 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덴마크 국립박물관의 전문가들이 이 해골을 연구하고 탄소 연대 측정을 했는데, 그 결과 이 해골은 AD 340년에서 431년 사이에 살았던 남성의 것이었으며, 이는 루치오 1세가 사망한 254년보다 거의 100년 후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해골은 루치오 1세도, 시구르드 왕의 해골도 아니었음을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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